Aug 16, 2008

소급적 저작권 양도나 이용허락은 무효(Davis v. Blige 판결)

미국 제2 연방 항소법원이 2007년 10월 Davis v. Blige 사건에서 저작권 이용허락이나 저작권 양도(retroactive license or assignment)는 소급효를 가질 수 없다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 판결에 따르면 소급적 이용허락이나 저작권 양도 계약은 무효이고, 이미 발생한 저작권 침해로 인한 책임을 면제하는 효력도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과거의 저작권 침해로 인해 발생한 책임을 면제하려면 별도의 면책합의가 필요하게 되었다. 또 저작물이 공동저작권자의 소유에 속한 경우에는 공동저작권자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만 과거 침해행위에 대한 책임 전부를 면책 받을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피고들은 공동저작권자 중 1인이 사후에 소급적으로 저작권을 양도하였다고 주장
작사가인 원고 Davis는 “Queen of Hip Hop Soul”로 불리는 유명 랩가수인 Mary Jane Blige라는 가수의 앨범 “No More Drama”에 실린 두 개 노래의 가사가 자신이 Bruce Chambliss와 함께 작사한 가사와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들은 피고 Bruce Miller가 Chambliss로부터 저작물 이용 이전에 구두 약정을 통해 저작권을 양도받았고, 저작물 이용 이후에 사전 구두 약정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서면 계약이 체결되었으며, Miller는 다른 피고들에게 가사의 이용을 허락하였으므로 피고들은 저작권 침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피고들이 제출한 서면 약정에는 Chambliss가 Miller에게 저작권을 창작일을 기준으로 양도한다는 소급효에 관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1심 법원은 구두약정은 인정되지 않지만, 소급적 저작권 양도의 합의를 통해 피고들의 과거 저작권 침해 행위가 치유되었다는(cure past infringement) 이유에서 피고들의 책임을 부인하는 취지의 summary judgment를 선고하였다. 항소법원은 이와 같은 1심의 판단을 파기하였다.

소급적 저작권 양도 합의가 과거의 침해행위를 치유한다는 1심 판결은 파기됨
1심 법원은 공동저작권자인 Chambliss가 소급적으로 저작권 양도를 할 수 있는 근거로 공동저작권자 중 1인은 자기 자신의 지분을 타인에게 자유롭게 양도하거나, 타인에게 저작물 이용을 허락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항소법원은 지방법원의 이 부분 판단을 파기하면서, 소급적 저작권 사용허락이나 양도는 모두 법률상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항소법원 판단의 근거는 이용허락(license)과 화해(settlement)는 엄밀히 구분하여야 하는데 소급적 저작권 양도의 유효성을 인정하면 저작권법의 기본 정신이 파괴되고, 다른 공동저작권자의 권리를 해친다는 것이 주된 근거이다.
항소법원의 판단과 같이 이용허락(license)이나 양도는 본질적으로 장래를 향해 저작권 이용을 허락하는 성질을 가진다. 반면 화해(settlement) 또는 면책(release) 합의는 그 합의에 참여하는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서, 과거에 이미 일어난 저작권 침해로 인한 책임을 확정하거나 면책하는 소급적 효력을 가지는 성격의 합의이다. Chambliss와 Miller 사이의 합의가 이용허락이나 양도인지 아니면 화해계약인지에 따라 공동저작권자인 Chambliss가 그러한 법률행위를 단독으로 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달라진다.

소급효 있는 저작권 양도나 이용허락 인정은 다른 공동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
공동저작권자 중 한 사람은 단독으로 자기의 지분을 자유로이 양도할 수 있고, 타인에게 장래에 저작물을 이용할 비독점적 권리를 허락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공동저작권자의 지분은 양도성이 있는 권리이고, 공동저작권자 중 한 사람이 제3자에게 비독점적 이용을 허락하더라도, 다른 공동저작권자는 여전히 저작물을 이용할 권리를 보유하며 이용허락을 한 공동저작권자가 받은 저작물 사용대가에 대해서 배분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동저작권자는 단독으로 독점적 이용권한을 부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독점적 이용권한을 설정하면, 오로지 독점적 이용권자만 저작물을 이용할 권리를 가지고, 다른 특별한 합의가 없는 이상 공동저작권자라도 저작물을 이용할 수 없게 되어, 단독으로 독점적 이용권한을 설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다른 공동저작권자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점적 이용권한의 설정은 모든 공동저작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 사건에서 Chambliss가 Miller에게 공동저작권자로서의 자기 지분을 양도하면 그 시점 이후부터는 Miller가 Davis와 함께 공동저작권자가 되어 스스로 저작물을 이용하거나 다른 피고들에게 비독점적 이용권한을 설정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Chambliss가 자신의 지분을 소급적으로 Miller에게 양도한 합의에 유효성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이다. Miller는 저작물 이용 당시나 다른 피고들에게 이용권한을 부여할 당시에는 저작물을 이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피고들의 노래가사 이용과 동시에 Davis에게는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 등의 권리가 이미 발생하였다. 만일 사후 서면 계약에 소급효를 인정하면, 소급효에 의해서 Miller는 작사 당시부터 Davis와 공동저작권자였던 것과 같이 법률상 의제하게 되어, 권한 없는 이용이었던 Miller의 저작물 이용이 소급적으로 권한 있는 정당한 이용으로 취급되고, Miller의 다른 피고들에 대한 비독점적 이용권한 설정도 권한 있는 자에 의한 유효한 이용권한 부여로 간주되게 된다. 따라서 소급효를 인정하면 Chambliss 단독의 행위로 인하여 이미 발생하였던 Davis의 피고들에 대한 권리가 소급적으로 소멸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만일 Chambliss가 Miller에게 자기 지분을 양도한 것이 아니고 비독점적 이용권을 설정한 경우라도 소급효를 인정하면, Chambliss의 단독행위로 인하여 Davis가 권리를 상실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즉 소급적 이용권한 설정의 효력을 인정하면 Miller는 이용은 소급적으로 이용권한 있는 저작물의 이용이 되어 Davis는 Miller에 대한 권리를 잃는다. 다만 비독점적 이용권자에 불과한 Miller는 제3자에게 이용권한을 부여할 수 없어 Miller를 제외한 다른 피고들의 행위는 여전히 침해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이 차이가 날 뿐이다.
소급효를 인정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상과 같은 결과는 공동저작권자는 자기 자신이 가진 권리 이상을 양도하거나, 다른 저작권자의 권리를 해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공동저작권자간 법률관계의 기본원리를 파괴하기 때문에, 허용될 수 없다는 항소법원이 1심 법원의 판결을 파기한 법률적 이유이다.
그 밖에도 항소법원은 소급효의 부정이 법률적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작권 침해의 유인을 감소시킨다는 정책적 이유도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만일 소급효를 인정하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행위 당시에는 권한이 없었던 저작물의 이용이 소급적으로 저작권 침해가 아닌 것으로 취급될 뿐 아니라, 소급적으로 공동저작권자가 된 자가 소급적으로 얼마든지 많은 제3자에게 이용권한을 부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예측할 수 없는 법률적 불확실성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또 소급효 있는 저작권 양도 합의가 허용되면 모든 저작권자와 화해를 하는 대신에 상대적으로 더 낮은 대가를 지불하고 공동저작권자 중 일부와 소급적 저작권 양도 합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므로, 저작권 침해의 유인이 높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효인 저작권 구두 양도의 소급적 사후 추인도 허용되지 않아
서면 합의는 저작물 이용 이전에 이루어진 구두 합의를 소급적으로 추인하는 효력을 가진다는 주장도 항소법원에서 배척되었다. 미국 저작권법상 공동저작권자의 지분의 양도는 서면으로 체결되지 않으면 무효이므로[17 .U.S.C. §204(a)], Chambliss와 Miller 사이의 구두 약정은 무효이다. 피고들은 사후의 서면 계약은 이미 이루어진 구두 계약을 서면으로 추인(ratify)하는 것이고, 따라서 구두 약정은 약정 당시로 소급하여 서면 요건을 갖춤으로써 유효하게 된다는 주장을 하였다. 항소법원은 이와 같은 추인의 논리 역시 소급적 저작권 양도의 효력을 부인해야 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침해책임 면제를 위해서는 공동저작권자 모두의 동의 필요
저작물이 공동저작물인 경우에 화해나 면책 합의는 모든 공동저작권자 전체의 합의가 필요하고, 공동저작권자 중 1인의 화해나 면책 합의는 저작물 전부가 아니라 그 1인에 대하여 그가 가진 지분 범위에서만 효력이 있을 뿐이라는 판단을 항소법원이 내렸다..

[시사점]
1. 저작물 이용 전에는 공동저작권자 중 1인의 허락만 받아도 저작물 이용 가능
이 판결은 타인의 저작물 이용하기 전에 반드시 사전 사용허락을 받아두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을 높여 주었다. 저작물을 아직 사용하기 전이라면 공동저작자 중 1인의 허락만 받으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2. 동의 없이 저작물을 이용한 이후에는 공동저작권자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화해나 면책 가능
이 사건 판결을 통해 사전 이용허락은 공동저작권자 중 1인의 동의만 받으면 되지만, 저작물을 동의 없이 이미 이용한 이후에는 공동저작권자 모두의 명시적 동의를 받아야만 화해나 면책 합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3. 사전 이용허락의 증거를 반드시 확보해야
이 사건 판결을 통해 저작권자 또는 공동저작권자의 1인의 이용허락이 저작물 이용 전에 있었는지 후에 있었는지의 판단이 저작권 침해 소송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갈림길이 되었다. 사전에 서면 합의를 받으면 가장 좋겠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서면 합의가 지연될 경우에는 사전에 저작물 이용에 관한 구두 합의가 있었다는 점을 반드시 증거로 남겨두어야 한다. 증거를 확보하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예를 들자면 라이센스 협상이 지연되는 가운데 저작물을 이용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경우에는 그 동안 협상 결과를 정리하면서 저작권자가 저작물 이용에는 동의하였다는 점을 확인하는 편지를 저작권자에게 보내두고, 서면 합의에도 과거 침해에 대한 합의부분은 사전의 구두 이용합의를 재확인하는 것임을 명시해 둔다면 사전에 저작물 이용합의가 있었다는 주장을 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사용허락과 달리 저작권 양도는 미국 저작권법상 서면으로 체결되어야만 효력을 가지고, 사후에 서면으로 추인하더라도 소급효를 가지지 않으므로, 반드시 서면계약을 확보하여야 한다.

by 신영욱, updated 2008-08-16, www.lawnb.com에 최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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