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7, 2010

강요에 의한 뇌물제공과 해외부패방지법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 Act, “FCPA”)은 외국 공무원에게 대가성 있는 뇌물을 지급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1977년에 제정된 법이다. 최근 미국 정부가 이 법 집행과 처벌을 강화하고 있기때문에 미국 기업들은 해외부패방지법 준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해외부패방지법은(1) 미국 증권거래법에 따라 증권을 등록하였거나, 증권거래법에 따라 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있는 회사(issuers), (2) 미국 시민, 미국법에 따라 설립된 회사, 외국법에 따라 설립되었더라도 미국에 주된 사업장을 가진 회사, 미국 거주자 (domestic concern), (3)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비거주 외국인 (foreign non-residents), (4) 위 (1)~(3)에서 말한 적용 대상자의 임원, 이사, 직원, 대리인과 주주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기업이더라도 예를 들어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되었거나, 미국 지사가 뇌물 제공에 관여를 하였다면 미국 해외부패방지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데, 그 나라들 가운데는 부패가 심하다고 알려진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나라들에서 공무원들이 강압적으로 뇌물을 요구하고, 기업들이 그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금품을 제공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과연 강요에 의해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지급하였을 때에도 미국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이 성립한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발생한 SEC v. NATCO Group Inc. 사건이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하기에 살펴보고자 한다.

소개하고자 하는 SEC v. NATCO Group Inc. 사건에서 피고NATCO Group Inc. (“NATCO”)는 해외부패방지법상 기록유지 의무와 내부통제 수립의무 위반 혐의에 대하여 SEC에 의해 피소되어, SEC와 6만 5천 달러 과징금을 납부하기로 합의하였고, 그 합의대로 법원은 과징금 납부명령을 선고하였다. [주1]

사실관계1: 이른바 “현금 벌금” 지급

이 사건 피고 NATCO는 원유채취 장비와 부대 설비들을 제조 판매하는 미국 회사이다. Test Automation & Controls, Inc. (“TEST”)는 NATCO 의 완전 자회사로서 2005년 6월 카자흐스탄에서 원유채취 설비와 전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TEST는 그 계약에 따른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현지 사무실을 설립하고 카자흐스탄 현지 직원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국민이 아닌 사람들도 직원 (이하 “해외 주재원”)으로 고용하였다.

카자흐스탄법에 따라 해외주재원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적법한 입국서류를 갖추어야 한다. 카자흐스탄 이민국 감독관들은 이민법이 제대로 준수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기업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관련 서류를 검사하고는 한다. TEST도 같은 이민법 준수 검사를 받게 되었다.

2007년 2월과 9월 카자흐스탄 이민국 감독관들은 TEST를 방문하여 이민법 이행 검사를 한 후에 해외 주재원들이 적법한 입국서류를 갖추지 않았고 주장을 하였다. 감독관들은 TEST가 현금으로 벌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서류를 갖추지 않은 해외 주재원 근로자들에게 징역이나 벌금형을 부과하거나, 그들을 추방하겠다고 위협을 하였다. 감독관들이 말하는 현금 벌금 위협이 현실적이라고 믿고 TEST 현지 직원들은 미국에 있는 TEST 본사 경영진에게 지침을 구하였다. TEST 경영진은 이른바 현금 벌금을 지급해도 좋다고 승인을 하였다. 카자흐스탄 직원들은 우선 개인 돈을 모아서 2007년 2월에 2만 5천 달러, 9월에 2만 달러, 모두 4만 5천 달러를 이른바 현금 벌금으로 카자흐스탄 이민 감독관에게 지급하였다. 미국 TEST는 나중에 그 금액만큼을 미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송금하여 비용을 환급해 주었다. 그러나 이른바 현금 벌금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었고, 강요를 받아서 지급한 뇌물 성격을 가진 금품이었다.

더나아가 TEST는 위 지급행위에 관하여 회계 장부에 허위 기재를 하였다. TEST는회계 관련 서류에 2007년 2월 지급에 관해서 ‘3월치 상여금의 선지급’ 또는 ‘임금 선급’이라고, 2007년 9월 지급에 관해서는 ‘비자 벌금’이라고 거짓 기재를 하였다.

사실관계 2: 허위 영수증을 이용한 이민 문제 자문료 지급

TEST는 해외 주재원이 적법한 입국서류를 갖출 수 있도록 관련 문제를 해결해 주는 컨설턴트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그 컨설턴트는 이민업무를 취급할 수 있는 적법한 자격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고, 단지 취업비자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카자흐스탄 노동부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였다. 카자흐스탄 법에 따르면 상업은행 계좌로부터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서는 비용 지급 청구서와 같은 서류 제출을 요구하였다. 이민업무를 취급할 자격이 없는 컨설턴트에게 자문 비용을 지급하기 위하여, TEST 현지지사는 그 컨설턴트가 지배하고 있는 회사가 발급한 허위 지급청구서를 은행에 제출하는 방법으로 8만 달러를 인출하였다. TEST 현지 지사는 같은 허위 영수증을 TEST 미국 본사에 제출하였고, TEST 미국 본사는 그 영수증이 허위임을 알고도 그 비용을 TEST 현지 지사에 환급해 주었다.

NATCO의 자진 조사, 시정과 신고

NATCO는 2007년 회계 감사 도중에 위 사건을 인지하고, 자진시정조치를 취하였다. 먼저 NATCO는 자발적으로 내부 조사를 벌이고, 그 조사 결과를 자진하여 SEC에 보고하였다. 또 회사는 관련자들을 징계하거나 해고한 것을 비롯하여 과거 위법한 행위를 시정하였다. 더 나아가 전세계 사업부문에 걸쳐 해외부패방지법 준수와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채택하였다. 그 조치들에는 준법감시팀 직원 증원과 준법감시 업무만 담당하는 최고준법감시인 임명, 표준 업무위탁계약서 개정, 외부 용역업자의 업무수행을 조사할 수 있는 절차 신설, 해외부패방지법 교육 강화, 조직개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사점

(1) “강요”가 뇌물제공죄 에 대해 방어사유가 될 수 있는지
미국 해외부패방지법상 뇌물제공죄는 부정한 의도 (corruptly)와 대가성[주 2]을 요건으로 한다. 따라서 강요에 의해 외국 공무원에게 이익을 제공한 경우에는 부정한 의도가 없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 점에 관하여 명확한 법률 규정이나 판례가 없는 실정이다. 다만 ‘유전을 폭탄으로 날려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이익을 제공한 경우에는 부정한 의도가 없다고 볼 수 있다는 표현이 의회 입법과정과 법원이Kozen사건에서 배심원에게 준 법률해석 지침에서 언급되었을 뿐이다 [주 3]. 강요가 있었을 경우 뇌물제공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더라도, 그 강요는 유전 폭파 위협의 예에서 보듯이 매우 중대한 정도에 이르러야 하고, 단순한 불이익을 위협받은 정도로는 뇌물제공죄 성립을 방해하지 못한다고 보인다.

SEC가 ‘강요된 뇌물 (extorted payment)’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강요’라는 단어를 뇌물제공으로 인한 책임을 면하게 할 수 있는 유효한 방어수단이라는 뜻에서 법적인 의미로 구사하였는지, 아니면 법적인 의미가 담기지 않은 통상적 의미로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SEC의 취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이 사건이 강요에 의한 뇌물제공이라는 쟁점에 관해 가지는 의미에 관해서도 상반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이 해외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안전과 신상을 위협하는 공갈 (blackmail)이 동기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뇌물제공죄가 성립한다는 법리를 확인하였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주 4]. 한편으로 SEC가 뇌물제공죄 자체가 아니라 뇌물제공 이후 이를 은폐하려는 행위들만 문제 삼고 있고, 금품 제공 행위에 대해서 ‘강요’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으므, SEC가 강요성을 명시적으로는 아니지만 사건 처리에 고려하였고 따라서 이 사건이 ‘강요’를 방어 사유로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주 5]. DOJ가 이 사건과 관련해서 회사와 개인 어느 쪽에 대해서도 아직 공소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요성이 유리하게 작용하였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SEC나 DOJ가 강요성이 아닌 다른 이유로, 즉 이 사건 금품이 근로자들의 신상에 관련되어 제공되었을 뿐이고 회사의 사업 자체와 관련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대가성이 없거나, 피고가 관련 사실을 자진신고하고 조사에 협조하였기 때문에 뇌물제공죄 부분은 공소를 제기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여간 NATCO가 뇌물제공죄로 기소되지 않았고 SEC가 어느 정도는 강요성을 고려하였다고 추정된다는 점은 앞으로 ‘강요’를 방어 사유로 주장해 볼 수 있는 일말의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인다.

(2) “강요”가 기록유지 의무와 내부통제 의무 위반에 대한 방어사유가 될 수는 없다
NATCO가 뇌물제공죄로 기소가 되지는 않았지만, 기록유지 의무와 내부통제 의무 위반으로는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 부정한 목적을 요건으로 하는 뇌물제공죄와는 달리 기록유지 의무 위반과 내부통제 의무 위반은 고의나 인식을 요건으로 하지 않으므로, ‘강요’를 방어사유로 주장할 수는 없다.

해외부패방지법상 기록유지 의무와 내부통제 의무 위반으로만 피고가 피소된 이 사건에서 이익제공이 강요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 쟁점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NATCO가 기록유지 의무 위반 및 내부통제 의무 위반만으로도 피소되었다는 점은 해외부패방지법에 따라 기록유지 및 내부통제 의무를 매우 엄격하게 준수하여야 할 필요성을 각인시켜 준다. 기록유지 및 내부통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회사 자금에 관하여 지출한 날짜, 금액, 거래 상대방은 물론이고, 사용 목적이나 용도를 포함하여 모든 사항이 사실대로 정확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 사건은 미국 정부가 해외부패방지법 집행을 위하여 기록유지 및 내부통제 의무 규정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최근 경향과 맥락을 같이 하는 사건이라고 보인다.

(3) NATCO의 내부조사와 조사협조가 가져온 효과
NATCO는 법위반 사실을 수개월 만에 발견하고, 철저한 내부조사와 시정조치를 취하고, 정부당국에도 이 사실을 신고하였다. 이 사건 이외에 다른 외국 공무원에 대한 이익 제공 행위는 발견되지 않아서, 이 사건은 일회성 사고에 불과하였음이 밝혀 졌다. 이와 같이 이 사건이 비교적 경미한 일회성 위반이고, NATCO가 금품제공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으며, 강요된 상황이었다는 정황상 참작할 점이 있었고, NATCO가 조사에 적극 협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재가 이루어졌다. 결국 이 사건이 제재로 이어졌다는 점은 자진신고와 조사협조가 면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사건 제재가 이루어진 직후인 2010년 1월 13일SEC는 법위반 사실의 자진신고와 조사협조를 적극 장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한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조사협조를 조건으로 하는 불기소 합의(non-prosecution agreement), 기소유예 합의 (deferred prosecution agreement), 양형상 정상참작 권고 (receive credit for cooperating under cooperation agreement)들을 허용하는 정책을 발표하였다[주 6]. SEC의 새 정책 하에서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사건에서 회사가 조사에 협력하였을 때 과연 어느 정도까지 유리한 처분이 내려지게 될지도 앞으로 주목할 대목이라고 보인다.

[주]
* 이 글은 “FCPA and Extortion: the NATCO Settlement” (O’Melveny & Myers client alert, 2010년 3월 18일)을 상당 부분 참고하여, 한국 독자를 위한 추가 설명과 필자의 견해를 덧붙였음을 밝혀 둔다.

[주 1]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은 크게 뇌물제공죄, 기록유지 의무 위반, 내부통제 의무 위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에 대해서는 징역, 벌금, 또는 과징금 (civil fine)을 부과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SEC는 형사처벌 대신에, 과징금 부과 명령을 법원에 구하였다.

[주 2] for purpose of –
(A) (i) influencing any act or decision of such foreign official in his official capacity, (ii) inducing such foreign official to do or omit to do any act in violation of the lawful duty of such official, or (iii) securing any improper advantage; or
(B) inducing such foreign official to use his influence with a foreign government or instrumentality thereof to affect or influence any act or decision of such government or instrumentality
15 U.S.C. §78dd-1 (a) (1)

[주 3] S. Rep. No. 95-114, at 10-11 (1977), reprinted in 1977 U.S.C.C.A.N. 4098, 4109; U.S. v. Kozeny, 664 F. Supp. 2d 369, 396 (S.D.N.Y. 2009)

[주 4] The FCPA blog, NATCO Settles “Extorted” Bribe Case (2010년 1월 12일)

[주 5] “FCPA and Extortion: The NATCO Settlement,” O’Melveny & Myers, LLP client alert (2010년 3월 18일)

[주 6] SEC 보도자료, “SEC Announces Initiative to Encourage Individuals and Companies to Cooperate and Assist in Investigations” (2010년 1월 13일) (http://www.sec.gov/news/press/2010/2010-6.htm)

(2010. 4. 8. 로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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